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집행위원장 신철)가 지난달 9일 개막, 16일에 막을 내렸다. 한국영화 탄생 101년째를 맞은 올해 BIFAN은 ‘장르의 재능을 증폭시켜 세계와 만나게 하라’는 새 미션을 수행했다. BIFAN을 통해 장르영화의 재능을 보여 준 ‘경쟁’ 부문 수상작 및 ‘괴담 단편 제작지원 공모전’ 당선작의 감독·배우들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시상식 때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제 인생에서 여우주연상은 못 받으려나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독님과 그 어느 현장보다도 프로페셔널했던 우리 스태프와 배우분들 덕분에 좋은 영화가 만들어져서 영화를 보고 울고 참 좋았어요. 그분들 덕분에 받은 상인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인 일들을 겪고 만난 단비 같은 작품이에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없었으면 이 작품 못 찍었을 것 같아요. 우리 딸 아이한테도 너무 고맙습니다. 어렸을 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곤 했었는데, 또 한 번 좋은 기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고백>의 여주인공 박하선이 지난 7월 16일 제24회 BIFAN 폐막식 때 밝힌 ‘배우상’ 수상 소감이다. 당시 떨리던 목소리가 생생하고, 다소 울먹이기도 한 모습이 선하다. 

■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감사드린다. 사실 20대에는 패기 넘치는 마음에 ‘앞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에 깎이면서 위축되었을 때에는 ‘나에게 그런 상은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막연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라는 꿈같은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그 꿈이 빨리 이루어져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또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든, 다시 버틸 수 있는 힘을 받은 순간이었다.”

<고백>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가족, 폭력의 고리와 상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스릴러 장르로 깊이 있게 풀어냈다. 의미심장하고, 흥미진진하다. 서은영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제24회 BIFAN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 부문에서 ‘배우상’과 ‘배급지원상’을 받았다. 이 부문 심사는 엄혜정(촬영감독)/장건재(교수·감독)/피어스 콘란(평론가·제작가)이 맡았다. 장건재 교수는 박하선의 연기에 대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응집력 있게 표현해 영화의 주제의식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고 평가했다.

 

■ <고백>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일적으로 많이 좁아져 있었을 때 찾아온 작품이다. 사실 배우로서 인생에 큰 변화를 맞으면서 겪는 감정은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것들이 커리어적 면에 있어서 제한이 생기기도 해 속상했다. 그런데 <고백>은 그런 경험을 통해 그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겠기에 참여한 작품이다.”

■ 작품 선택의 기준이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품 선택의 기준은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느끼기에 재밌으면 한다. 나부터 재밌어야 그걸 느끼는 관객들도 재밌게 보는 것 같다. 주관적인 데에서 객관적으로 확대되는 기준이다. 배우로서 경험을 쌓으면서 알게 됐고, 영화 <청년경찰>을 만났을 때부터 주·객관적인 ‘감’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비로소 터득한 듯하다.”

■ 촬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연기적으로 잘 안 풀리는 장면에 대한 어려움은 있었다. 연기가 한창 고플 때 촬영한 작품이어서 불가능한 부분이 없게끔 연습하고, 좀 과해 보이는 면이 있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촬영할 때는 좀 더워서 힘들기도 했다. ‘보라’(감소현)의 집이 특히 더웠다. 그 진득진득한 분위기가 씬(scene)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 다른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분들도 어느 현장보다도 따뜻하고 좋았다. 서영화 선배님의 연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함께 작품을 하게 되어 영광이었다.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은 분이라 편히 이야기 나누면서 찍었다. 촬영 내내 참 좋았다. 소현이는 맑고 밝은 건강한 에너지가 좋았다. 단역 분들도 모두 연기를 잘해주셔서 자극받고, 긴장되어 연기자로서 정말 좋은 현장이었다. 감독님은 내가 느끼기에도 뻔한 연기를 하면 작은 씬도 쉽게 OK를 하지 않으셨고, 내가 연기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신 덕분에 조금 다른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의욕적인 신입경찰 ‘지원’(하윤경)은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을 만난 후 이상하게 그녀가 신경 쓰인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를 유괴했으니 살리고 싶으면 복지관에 기부를 하라는 유괴범의 이상한 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리고 ‘지원’은 사건과 ‘오순’의 연관성에 대해 의심한다.

서은영 감독의 <고백>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은폐되어 온 아동학대와 폭력의 고리,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죄와 벌’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채 다른 상처받은 이를 돌보는 ‘오순’을 맡아 폭넓은 감정의 진폭을 여린 듯 단단하게 그려낸 박하선을 비롯한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와 감독의 진중한 연출은 영화에 깊이와 오랜 여운을 더해준다(모은영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 ‘오순’을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반대로 보람된 순간이 있었다면 말해달라.

“나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들,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상처 등을 기억하고 끌어내야 하는 작업이라 조금 힘들기도 했다. 나의 작은 경험에도 살을 붙여 상상하고 해야 했으니까. 감정적으로는 아팠지만 좋았던 기억들이 많아 더 좋았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구축하고, 연습한 것들을 온전히 담기도 어려운 일인데, 그 이상으로 속 시원하게 다 쏟아낸 장면이 어느 작품보다 많았고, 그래서 이 영화를 찍으면서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고, 꽉찬 행복을 느꼈다.”

 
■ 영화 <고백>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우리 영화는 재미있고, 무섭고, 의미 있는 영화다. 아동학대와 관련해서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세히 보지도 못할 만큼 화가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기력했다. 이 영화가 아동학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데,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최근에 피해 아동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원하던 곳으로 가게 된 소식을 접하면서 정말 기뻤다.”

박하선은 2005년 드라마 <사랑은 기족이 필요해>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드라마 <동이>(2010)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 <투윅스>(2013) <쓰리 데이즈>(2014) <혼술남녀>(2016) 등과 영화 <영도다리>(20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 <챔프>(2011) <음치클리닉>(2012) <청년경찰>(2017) 등이 손꼽힌다. 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단아한 모습에서 코믹한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 배우로서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11월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촬영 중이다. 그동안 보여드린 적 없는,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에서도 다양한 모습 보여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2012년 제16회 때 BIFAN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이번 수상으로 BIFAN과 인연이 더욱 깊어졌다.

“BIFAN이 어느새 유일무이한 장르 영화제이자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제영화제가 된 것 같아 제 일처럼 기쁘다. 앞으로 또 BIFAN에서 의미 있는 일로 시민·관객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

/임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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