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든 할머니의 60년 봉사활동

무슨 일이든 수십 년 동안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는 자원봉사 활동과 일평생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시선을 끄는 기부천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독은 ‘봉사와 나눔’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부천 벌응절리(역곡 안동네)의 130년 된 고택에 살고 있는 죽산 박씨 종손 박희자 할머니(1942년생)이다.

“봉사와 나눔 활동으로 힘드냐고요? 아니요. 봉사와 나눔 활동으로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박희자 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부를 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애인, 노숙자, 꽃동네, 천주교, 시민운동단체, 동사무소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했다. 그럼에도 박 할머니의 선행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려진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박 할머니는 남 몰래 이웃을 돕는 기부천사로 그간의 봉사는 샐 수가 없다. 20대부터 시작된 나눔과 봉사는 40대 초인 1984년 역곡2동 동사무소 신축 기부로 이어졌다. 

1994년에는 경기도 성환에 있는 육군 제3탄약창의 성요셉 성당(당시 1억5천)을 지어 기부하여 천주교 준종교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01년에는 역곡성당 신축 헌금 1억3천5백만원을 기부했으며 충북 음성 꽃동네에 앰블런스 1대와 아프리카 꽃동네 승합차 1대를 기증했다. 2008년에는 역곡1동 자율방범대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봉고차 1대를 기증하는 등 지금도 크고 작은 봉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12년에는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이태석 신부에게 1천만원을 기부했다.

  

 

■ 자신은 옷 한 벌 안 사입어

이런 큰 돈이 드는 봉사 외에도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한 봉사도 엄청나다.

노숙인 영등포 토마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데 이어 지역사회에서 김장김치 나눔과 연탄배달 등에 기부를 했다.

특히 그는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으로 성당 빈첸시오 회장을 역임하면서 주위 어려운 사람들에게 반찬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를 하면 마음이 즐겁고 보람을 느낍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기부한 박 할머니지만 정작 본인은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한번 가 본 적이 없다. 변변한 옷 한벌도 안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과일 및 야채 농사를 지어 번 돈을 모두 기부하며 살아왔다.

박희자 할머니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봉사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나이 많은 독거 어르신들이 2021년 보릿고개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햇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음성 꽃동네에 장애인 운송 차량을 후원할 계획이다.


■ 할머니의 고택은 친일의 잔재?

그런데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박 할머니가 요즈음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자신이 일평생을 살고 있는 고택이 일제 잔재이며 가족이 친일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단체의 이러한 주장은 박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에서 일을 한 때문이다. 손녀인 박 할머니 입장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상태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당시 성균관 유생으로 있다가 조선총독부로 차출되어 근무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것이 박 할머니가 전해들은 이야기의 전부이다. 

박 할머니가 5대째 살고 있는 130여년 된 고택은 친일 의혹을 받는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서울(사근동)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감했다. 고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 지역사회 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

박 할머니는 최근 고택이 공공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이 집을 부천시 향토문화제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고 막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 나이 여든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이 집을 저는 무너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이 집이 부천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되면 고택 3채 모두를 부천시로 기부하고 사는 날까지 유지 및 보수에 들어가는 관리비 등 일체를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이 집이 후손들에게 역사 교육의 장소로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을까요?”

부천의 한 향토사학자는“이 고택은 단순한 집의 개념을 넘어 조상의 지혜와 기술, 그리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이전 시대의 건축양식과 사상, 그리고 생활방식 및 문화의식을 엿 볼 수 있는 관광 및 교육장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부천시가 원형을 유지 발전 지키는 노력을 통해 관광자원화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문화와 실생활을 경험하는 체험관으로 연계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 60년 봉사의 삶을 누가 모욕하나

인터뷰 말미, 박희자 할머니는 어린 시절을 다시 회상한다. 

“선조들은 밥 지을 때 원미산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으면 저를 시켜서 곡식 몇 되박을 갖다주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그의 할아버지가 친일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평생 ‘나눔과 베품’의 삶을 실천해 온 박희자 할머니에게 그 죄목을 뒤집어 씌우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모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고택을 부천시 향토문화재로 신청하자 일각에서의 음해로 밤잠을 설치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그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과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간격 앞에서 우리도 갈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임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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