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비

죽음으로도 닿을 수 없었던 그리움의 병목지대
허기진 세월이 한 폭 그림 속에 갇혔다
거친 숨을 품어내며 박제가 된 날을 응시하는 흰소
홰 뿔을 안테나처럼 세워
지글거리는 그리움에 주파수를 맞춘다
궁핍이 앞을 막아 움직일 수 없는 소는
오른쪽 발을 들어 어디로 가려 한 걸까
한 뼘 남은 생의 마지막 외출이었을까
투박하게 드러난 뼈마디
잔등에 날리는 하얀 깃털
총채처럼 세워진 꼬리
단단한 뒷다리는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휘달릴 듯하다
현해탄 건너간 가족을 향해
닿을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겠다
품어대는 하얀 입김의 클랙슨에도
풀릴 기미가 없는 정체된 날들을 보내야만 했던
옴짝달싹할 수 없는 미아 같은 생의 길목
눈자위 가득 세상을 향한 아픔이 서려있다

예술가를 돈으로 판단하여 가치를 매기는 시대에 화가 이중섭의 값은 얼마일까. 가족을 이국에 보내고 거처할 방조차 없이 남의 집을 떠돌며 담뱃갑 속 은박지에 못으로 그림을 그리고 아무 종이나 잡히는 대로 그린 그림을 한 끼의 밥값으로 내던가 아니면 신세 진 사람들에게 던지듯 줘버린 행동은 기행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피접이 상종한 듯 한 몸체에 주름진 얼굴, 남루한 옷차림은 한 예술가를 시대의 방랑자로 만들고 더 애타게 했다. 그렇게 살다 생을 마감한 뒤 그를 거지취급 했던 미술계는 한껏 추켜올려 은박지 그림 한 장에 수천만을 오르내리는 가격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부를 채웠다. 이중섭이 이를 알 리도 없겠지만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 매우 궁금하다. 어디 이중섭뿐인가. 고흐의 생애도 이중섭과 비슷했지만 살았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난에 온갖 멸시를 받다가 사후 그의 그림은 수천억을 호가 하는 가격으로 일부 수집가들의 금고를 채워주고 있다. 예술의 역사, 특히 화가들의 생애를 보면 가난과 궁핍에 찌들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가난할수록 위대한 작품을 남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중섭의 그림 중에 흰소는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고 대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보여주는 명작 중의 명작으로 얼마 전 타계한 이건희 회장의 유품으로 국가에 헌납되어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김나비 시인은 대표작으로 뽑히는 흰소의 유례를 파악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황소의 역동적인 모습을 사무친 그리움의 불꽃으로 표현하여 그 앞에 선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강력한 인상은 이중섭이 얼마나 많은 고난 속에서 헤매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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