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환  

늙는다는 건
덕지덕지 쌓인 세월의 찌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는 일이다

욕심을 앞세워 앞만 보고 내닫던
지난날의 오만을
모른 척 묻어두긴 쉽지 않을 터,
가는 길이 저마다 다른데
행복의 색깔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힘들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길,
새끼들 틈에 끼어
얹혀사는 일도 버겁지만
남에게 짐이 되는 삶은
더더욱 견디기 힘들 뿐이다.

중략...

남은 길도 바쁜데
감출수록 드러나는 허물을 어찌 감당하랴
늙는다는 건
결국 가리어진 삶의 흔적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일이다.

늙는다는 건 삶의 흔적들을 한 겹 한 겹 벗겨 내는 일이라는 말에 누가 틀렸다고 할 것인가. 생명체가 탄생하는 건 한정된 역량을 주어 그만큼만 살아가라는 뜻이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족쇄다. 첫발을 내디디고 출발하여 긴 곡선을 따라가는데 고개 너머 광경은 볼 수가 없어 올라간 만큼 보이는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앞은 짐작만 할 뿐, 짚어온 자국조차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보편적인 삶이다. 예측한 삶은 있을 수가 없고 미래는 현재의 고달픔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런 삶 속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만큼 주어진 것도 잊은 채 욕심을 부리고 얻지 못했을 때는 괴로워하고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하여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한계를 알고 주어진 삶에 순종하게 되는 걸까. 최재환 시인이 말하는 황혼 무렵이 되면 알게 될까. 자신의 역량과 앞날이 보인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량이 다할 때이다. 즉 걸어온 만큼의 길에서 남은 길을 셈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덕지덕지 쌓인 세월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털어낸다는 것은 오욕칠정을 다 버리는 게 아니라 전부를 거둬드리는 일로 시작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남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재환 시인은 삶의 끄트머리를 내다봤다. 이것은 누구나 보이는 게 아니고 인생의 과정을 겪으며 고난의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보인다. 결국 인생이란 허무하지만 자신의 길을 다 이해한다면 보람된 삶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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