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자

날이 채 밝지 않은 늪 여기저기서
고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포늪을 포근히 에워싼 짙은 물안개
먼동이 트는 것 보고
휘장이 걷히듯 그 빛 온몸에 걸치며
바람의 운율에 맞춰
우아하게 군무하는데
나도 수선화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수면 위로 고개 내밀며 반기는
부레옥잠 수련 자라풀 마름 어리연꽃이
늪에 가득한데
부딪치듯 부딪치지 않는 삶이
참으로 심오하고
자연의 순리가 존재하여
순종의 향기가 가득한
신비스러운 늪의 세계에 빠져든다

사람은 자연의 풍경에 감화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신비하게 느껴져 자신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동화된다.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소리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눈에 들어와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때나 갖는 경험이 아니다. 유명한 경승지에 가서도 아무 느낌 없이 주위의 풍광을 즐기기만 할 때가 많고 다녀와서도 남는 게 없어 그곳에 간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은 준비 없이 갔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 자연 늪지다. 4,000만 년 전에 생성되었으며 생태계 특별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342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늪 자체가 천연기념물이다. 우리가 영구히 보존하여야 할 유일한 자연의 보고다. 김길자 시인은 우포늪에 가서 그곳의 모든 것에 동화되어 자연이 사람에게 무엇을 주며 어떤 존재인가를 확실하게 느꼈다. 자연의 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듣는 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안개는 모든 것을 가리지만 소리를 만들어 내는 존재다. 스스로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속에 들어가 분간하기 힘든 상태가 되면 체감으로 전해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천상의 소리이며 영혼이 만들어내는 꿈의 소리다. 더구나 새벽에 피어나는 안개는 신비함을 넘어 전율을 느끼게 하는 리듬 없는 악보다. 먼동이 트는 순간을 온몸으로 감싸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휘장이 걷히듯 휘날리는 자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표현할 수 없는 신비다. 거기에 부레옥잠, 수련, 자라풀, 마름, 어리연꽃 등이 핀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면 자신의 삶은 어떻게 됐듯 매료되어 잊어버린다. 김길자 시인은 자연에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을 우포늪에 가서 알게 되고 우리에게 삶이 고달프다면 꼭 한 번 다녀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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