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야고택
동야고택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소산(素山)마을은 안동 여행길에서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옆으로 드넓은 풍산들녁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유서 깊은 전통과 한국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걸출한 인물들의 강직한 절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조상의 손길을 고스란히 간직한 청원루(보물)와 삼구정, 양소당, 삼소재, 묵재고택, 동야고택, 비안공구택 등 7점의 문화재와 역동재와 홍문, 역동재사, 양소당 별묘 등 4점의 안동시문화유산 등 다양한 콘텐츠를 품고 있다.

마을이 품고 있는 문화재는 2㎞ 남짓한 탐방로를 따라 관람할 수 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여행객들이 쉬어 갈만한 소산마을생태공원과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바로 앞 언덕 위에는 안동의 빼어난 명승지인 삼구정이 있다. 조선조 성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가 88세의 노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지은 정자로 삼구정은 세 마리의 거북이가 있는 정자란 뜻이다. 십장생 중 하나인 거북이 모양의 돌 3개가 삼구정 앞에 놓여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택리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청원루
청원루

 

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청음 김상헌이 ‘청나라를 멀리 한다’해서 명명한 국가 보물 청원루가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했고 주화파의 주장에 따라 결국 항복하기로 했다. 김상헌은 화의를 청하는 최명길의 국서를 찢고 자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삼전도 항복 후, 김상헌은 학가산 아래 목석거라는 초옥을 짓고 은거했다. 이후에도, 인조가 명을 공격하려는 청나라에 군사를 지원하려 하자, 반대 상소를 올려 청나라로 압송됐다가 6년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남긴 시가 유명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의 맏형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던 날 폭약을 터뜨려 순절했다고 한다. 

영의정, 대제학, 승지 등을 배출한 소산마을은 안동 김씨 500년 세거지로 금산촌(金山村)으로 불렸었다. 그러나 청음 김상헌이“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을 금산촌이라 하는 것은 화려해 합당하지 않다”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素山)으로 고쳤다 한다. ‘깨끗하고 희며, 빛나는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을 지녔다. 

탐방로 좌측으로 걸어가다보면 동야고택, 안동김씨 종택인 양소당, 삼소재, 비안공구택인 돈소당, 삼소재 등이 고풍스레 자리하고 있다. 동야고택은 영남 8대 문장가로 이름이 높은 동야 김양근이 태어나 학문을 익힌 곳이다. 

비안공구택인 돈소당은 세종 때 문신인 비안공 김삼근의 옛집이다. 고려개국공신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가 소산에 입향해 지은 첫 터전이자 큰 인물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비안공은 첫째 아들이 한성판관을 지낸 김계권, 둘째가 ‘내 집엔 보물이 없고, 보물이란 오직 청백뿐이다’라는 유훈으로 유명한 보백당 김계행이다. 김계권은 한성판관을 지내며 한양 장의동에 세거지를 마련했고 손자 김번이 안동김씨 장동파의 파조가 됐다. 김번의 증손자가 청음 김상헌이다. 

이곳 돈소당에서는 김삼근의 맏손자(김계권의 장자)인 학조대사가 태어났다. 학조대사는 13세에 광흥사로 출가하여 세조부터 연산군 때까지 국사를 지낸 고승이다. 스승 신미대사를 도와 훈민정음 보급과 대장경 간행 등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했고, 이는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양소당
양소당

 

인근에 있는 양소당은 김영수(김계권의 막내)가 지은 23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안동김씨종택이다. 동야 김양근이 쓴 기문에 보면 질박하고 참되며 순수하고 예스러운 뜻을 취한 것이라 전한다. 지금은 한국관광품질인증을 획득해 한옥 운치를 누리며 숙박이 가능한 명소가 됐다.

건너에는 충렬공 김방경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종택 삼소재가 있다. 

이어 탐방로를 따라 가면 학조대사가 터를 잡아 대표적 명당으로 이름난 김계권의 묘가 있는 역동묘역이 나온다. 인근에는 ‘창평반월연화부수지’라는 연못이 나오는데 학조대사가 아버지 묘터를 잡은 뒤 풍수로 보아 물이 부족한 걸 알고 묘 아래 연못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마을 끝에 있는 역동재는 1734년 강론을 위해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 이후 국어, 영어, 지리 등 신교육 기관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은 도청 신도시 둘레길(총길이 84.8km, 7개의 테마) 중 2코스인 풍산평야조망길과 연결되어 있어 약 7.7km의 트레킹을 즐길 수도 있다.(서애공원-정산 서봉-동봉-약수터-소산리-소산지-가곡리-가곡로)

/권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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