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에 78억 명이 살고 있다. 삶의 종류도 그만큼일까. 개개인의 삶이 전부 다르다고 해도 전체를 하나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은 개개인이 취향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여건에 맞추다 보면 그렇게 살게 된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이 따르며 회한에 젖는 무상함이 삶이다. 고대광실에서 온갖 것을 다 갖고 사는 사람에게 즐거운지 묻는다면 끄덕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있으나 없으나 삶은 고달픈 것이다. 개개인이 다른 생각으로 살기 때문에 각자의 고난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이래로 수많은 사람이 사람의 삶을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더 나아가 종교를 만들어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하지만, 일시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언제나 같다. 사람이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 하는 방식. 이유. 의미 등 인간의 상황에 대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사람의 삶은 이해 불가한 영역이다. 삶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존재한다는 전제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무상 시인은 인생의 후반부를 정리 중인 원로 시인이다. 그만큼의 여정을 밟아오며 삶의 형태와 질, 크기와 방향을 체험했다. 똑같은 돌을 보고 어떤 사람은 호랑이를 닮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닮았다고 한다. 알고 보이는 만큼 사람의 심안은 달라서 이해하고 얻은 만큼 삶의 질이 각각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똑같은 뜻의 말도 전하고 듣기에 따라 이해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구 위에 살아도 시대와 문명의 변화에 따라 삶은 다르고 각각이다. 짧은 시 한 편으로 삶의 정의를 설파한 시인의 심안이 맑고 크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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