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선 
한전 인천본부장

연일 한전 적자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최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이전엔 잘 묻지도 않던 한전의 운영에 대해 괜찮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실제로 한전은 올 1분기 영업손실만 7조 7869억원으로 전년 손실액을 훌쩍 넘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 약 30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전망된다고 한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적자이자,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와 같은 적자는 우리 회사가 통제할 수 없는 연료비 폭등에서 기인한다. 2020년 4월 기준 배럴당 20달러였던 국제유가는 현재(’22. 5월 기준) 5배가 넘는 110달러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랐고, LNG 가격도 MMBtu당 29달러를 기록하며, 2020년도 4월 대비 13배 이상이나 올랐다. 이러한 연료비 상승은 우리 회사 실적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기생산에 필요한 석탄, LNG 등의 연료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연료가격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생산 원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반면에 이를 제때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한전은 전임 사장께서 재임 중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비싼 콩을 들여와 두부를 생산하여 싼 값에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근무한 적이 있는 요르단에는 “코브즈(Khobz)”라고 부르는 빵이 있다. 현지법인 파견 시절 끼니때마다 식탁에 자주 올라오던 이 빵은 일부 한국인들이 일명 “걸레빵”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그 말을 사용한 사람을 지적하여, 다시는 그러한 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둥글 납작하게 생긴 이 빵은 별명에 걸맞지 않게(?) 맛도 담백하고, 설탕이 듬뿍 들어간 빵과는 달리 설탕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 나도 건강식으로 즐겨 먹었던 귀한 음식이다. 단지 워낙 값이 싸기 때문에 걸레처럼 쓰고 버린다고 해서 그런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다.
실제로 식사를 마친 후 그 빵으로 식탁을 닦거나, 메인디쉬 음식의 받침으로 깔아 기름기를 흡수한 뒤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식당에서 따로 시키지 않아도 빵 바구니가 비면 얼마든지 계속 채워주고, 심지어 몇 장 먹지도 않고 남은 빵을 봉지채 쓰레기통에 버려 거지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빵값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많이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빈곤층 국민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끔 보장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너무 과하다 보니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버리기 일쑤다. 하도 기가 막혀 요르단 근무 시절 직접 계산해본 적이 있는데 당시 시가로 약 50만원 정도 하는 밀가루 1톤을 빵집에서는 약 5만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에 판매했다. 일반 시가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가격이면 구매할 수 있으니 체감상 얼마나 저렴했는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을 보조금 과다지급으로 심각하게 낭비되고 있는 요르단의 “국민빵”에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2020년 기준 주택용 전기요금이 MWh당 103.9달러로 OECD 25개국 중 가장 저렴하며, 이는 독일 전기요금의 30%, 일본 전기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당연히 소비자 입장에선 요금이 저렴하다고 느낄 때 굳이 절약할 이유가 없게 된다. 실제 우리나라는 에너지자급률이 17%에 불과한 에너지 수입국이나, 그간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전력소비는 세계 최상위, 에너지 효율은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력소비 원단위, 즉 GDP 1단위 생산에 사용되는 전력량은 0.390kWh/$로 덴마크의 5.1배, 일본과 독일보다 2.5배 더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야시간에 지하철을 타보면 냉방이 너무 심해서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니 그야말로 ‘물 쓰듯’이 아닌 ‘전기 쓰듯’ 흥청망청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은 전기요금은 전력 과소비를 더욱 부추기게 되어 자칫 전력수급 불안정 사태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구조적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연료비 변동분 정상 반영을 통한 적정 수준의 가격 시그널 제공으로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행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합리적인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차원의 에너지효율 낭비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달 25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모두를 돕는 가격통제는 재원 낭비”라며, “이를 아껴 저소득층에 바우처를 지급해 소득을 보조하는 등 타깃을 분명하고 두텁게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가 이같이 말한 이유는 민생을 지원한다는 혜택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지원이 불필요한 부자들까지 다 도와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전 내부적으로도 재무개선을 위한 고강도 자구노력이 한창이다. 지난달 18일 출자 지분 매각, 부동산 매각 및 해외사업 구조조정 등 6조원 규모의 자구 방안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대규모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요르단 전 국민이 먹는 귀한 음식 중의 하나인 빵이 정부의 과도한 보조금에 의해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도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로서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 써야 마땅하지만 낮은 가격 때문에 저평가를 받고 있다. 요르단의 “걸레빵”처럼, 전기를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행태를 끝내고, 왜곡된 전기요금의 합리적인 조정으로 에너지 체계를 개선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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