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해바라기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최세용 소장(56세)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본래 잘 생긴 외모지만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더욱 멋져 보이는 그는 동병상련의 장애를 가진 이들의 자립 및 복지 증진과 사회봉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열정으로 주위의 칭송이 끊이지 않는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날 무렵에는 잘 사는 사람보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살림이 곤궁해서 먹고사는 것이 팍팍하게 힘든 그의 어머니는 뱃속에 본인을 임신한 후 몇 날 몇 밤 설운 고심 끝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다고했다. 

오직 가난 했으면 한 입이라도 줄여야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 싶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무사히 다 채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어머니가 극약을 마신 탓에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와 발가락이 한데 붙어버린 비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났다고 했다. 

요즘이야 장애인을 위한 복지 수준도 높아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한 인권의 확장도 넓어졌지만 그 시절에는 신체적으로 조금만 이상하면 무시하고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최세용 소장은 “사람들은 저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집과 부모님까지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누나들도 표현은 안 했지만 적잖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또 “어머니는 늘 이 모든 것이 당신 때문이라고 저를 보실 때마다 가슴을 치며 통한의 아픈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이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 최 소장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고, 부모님이 중국집을 하셔서 틈틈이 배달을 했는데, “그때 친구들이 도시락 통을 들고 열심히 학교를 다니는데, 나는 짜장면 통을 들고 열심히 배달 일을 하였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깊어지던 청소년기에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으로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가?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이렇게 낳아 주셨나? 차라리 낳지나 말지. 왜 이런 장애가 하필 나여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혼자 고립된 채 많은 날들을 울며 방황을 했다고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가 되어서도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분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마침내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도 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썩이기도 했다며 회상을 했다.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따뜻한 가족이 곁에 있었기에 차디찬 현실의 벽에 부딪힌 저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었고 스스로 제 삶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 무렵 가까운 곳에 장애를 갖은 이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제 자신이 장애인으로서 고된 삶을 살아왔기에, 저와 같은 장애인들의 힘든 삶을 잘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장애인들을 위한 쉼터 같은 센터를 꼭 하나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뿐 제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시던 어머니가 그동안 모아두셨던 생명 같은 적금통장을 아낌없이 내주셨습니다.” 그 돈으로 지금의 해바라기장애인센터를 개소하게 되었으나 막상 센터 문을 열고 보니 적잖은 비용이 들어갔다. 게다가 무료급식까지 하다 보니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보조금 한 푼 없이 순수하게 후원만으로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넘어지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힘이 돼 주었던 그의 가족과 후원자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용기를 주었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고 있다고 했다. 

현재 그는 파주 봉일천에 센터에서 장애인 무료급식, 장애인 노래교실, 장애인 세탁 및 이용봉사, 장애인 정보화교육, 장애인 이동보조기구 무료점검 및 써비스, 장애인 고충 법률상담을 2014년부터 6년째 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정부에서 주는 상도 여러 번 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앞으로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시설에서 더 나은 식재료로 이곳을 찾는 장애인들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있었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묻자 “장애인들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몸에 익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다양한 직업 속에서 비장애인들과 상생이 이뤄지는 사회를 만드는게 목표”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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