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옥

겨울 끝에 봄이 있었다.
기빠진 동장군 틈에 응큼히 봄이 찾아왔지
봄 끝에 여름이 있었다.
항상 바쁜 여름이 헐레벌떡 낯 붉혔지.
여름 끝에 가을이 있었다.
찜통더위 속에서도 열열히 산하를 물들였지
가을 끝에 겨울이 있었다.
색동옷 고운 산하에 면사포로 꾸며댔지.

겨울 속의 봄
봄 속의 여름
여름 속의 가을
가을 속의 겨울

은근히 주고받는 계절의 탐색전은
견제의 잽이 오가는 지구전이었는데
이젠 겨울 끝에 여름
여름 끝에 겨울
어퍼컷으로 치고 드는 인파이팅이다
병든 지구촌엔
여름과 겨울의 한판승이 있을 뿐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이다. 직선으로 뻗어나간 선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제자리에 되돌아온다.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 달과 지구와의 차이도 원에서 시작되어 원으로 집결된다. 이런 것을 볼 때 시작과 끝은 원래부터 구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선이다. 아직까지 가닿지 못한 우주의 끝은 이미 우리가 밟고 선 땅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발밑을 잊은 채 우주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망과 불신, 그리고 사랑과 원망 등도 하나에서 억지로 구분지은 사람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 인식을 버리면 무지가 되지만 무지가 됐을 대 비로소 참 인간이라는 선지자의 주장이 절대는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따른다면 그게 진실이다. 그것을 믿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으며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다. 한데 사람이 가장 빨리 알아채는 게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으로 읽히고 반응하는 계절의 변화다. 덥고 차갑고 시원하고 뜨거운 변화는 몸이 먼저 알아챈다. 사람은 이런 변화에 맞춰 반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계절의 변화가 수상하다. 확실하게 구분되어 대비하던 계절이 때를 잊어버리게 변했다. 꽃 피는 것을 봤는데 어느새 떨어지고 저녁이면 잠드는 바람도 밤을 잊고 난리친다. 식물이나 자연에서 알아채던 변화가 직접 닫는 감각으로 알아채게 된 것이다. 강기옥 시인도 마찬가지다. 계절의 굴절된 변화에서 삶의 위기를 느낀 것이다. 한데 다르다. 변화의 실태를 말로 옮긴 것을 넘어 화려한 시절의 장면으로 꾸미고 그 자리에 투쟁의 권투장면을 그려 자연과 인간간의 상관관계를 펼쳐내었다. 사 계절의 변화가 두 계절의 축소판이 되어 인간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자.계절의 급작스런 변화는 멸망의 징조를 알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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