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숙

저 빈집은 귀가 어둡다

청명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도
어둠이 묻어있다

빈집을 차지한 그늘이
곰팡이처럼 번지고
쓸쓸한 풀벌레 울음이 묻어난다

뒤꼍에 버려진 늙은 감나무
발밑에 떨어진 홍시들
저 감나무는 누굴 기다리며
해마다 감을 매달까

빈집에 들른 가을이 핼쓱하다

지나가는 바람도
문을 흔들다가 되돌아간다


의. 식. 주 3요소가 삶의 기본이다. 입어야 바로 서고 먹어야 숨을 쉬며 기거할 곳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다. 의가 제일 먼저 대두된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남을 의식해야 예가 바로 서며 예가 바로 서야 먹을 수 있다는 기본 사상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아 사람의 인의지덕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주를 맨 앞에 놓고 서로 과시하며 경쟁으로 치닫는다. 과열되어 전쟁보다 더 격한 싸움으로 치닫는다. 입고 먹는 것은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세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에 집을 크게 늘려 위세를 부린다. 더구나 문명의 발달은 농경사회를 잊어버려 먹는 것은 하늘이 그냥 주는 것으로 오인하고 농경지를 버리고 도시에 집중적으로 몰려든다. 이런 폐단은 도시는 집이 모자라고 농촌은 집이 남아도는 현실에 직면하여 커다란 사회문제로 커졌다. 집을 구하기 위하여 영혼까지 팔아야 하고 저당 잡힌 영혼은 돈의 노예가 되어 무슨 짓이든 한다. 강도는 물론이고 살인, 방화, 사기, 도둑질 등 돈이 될 만한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과연 이게 사람이 사는 방법일까. 최예숙 시인은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농촌 출신이다. 농사짓는 것을 보며 자랐고 먹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꾸는 것인지를 안다. 그런 농촌의 풍경에 젖은 시인이 빈집이 즐비한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귀가 어두워 대답이 없는 집, 귀뚜라미 소리에도 어둠이 묻어있는 집, 그늘은 곰팡이처럼 번져 풀벌레도 목이 쉬었다. 이게 과연 내가 살던 집이었을까. 많은 식구들이 모여 아웅다웅하며 정답게 살던 집은 어디로 가고 황량한 모습의 빈집으로 남았는가. 이런 집을 두고 하늘을 쳐다보며 치솟는 아파트를 사려고 발버둥을 쳤는지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가을이 찾아왔어도 핼쑥하게 샛노란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거미줄에 얽힌 처마 밑은 벌레만 무성하고 마당은 잡초에 묻혀있다. 시인은 바람이 될 수밖에 없다. 고쳐 살지도 못하고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다. 이제는 휭하니 지나치는 바람이 되어 문을 흔들다가 돌아간다. 그러나 빈집의 추억은 가슴 깊이 묻어두고 돌아선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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