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이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발표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일본 중앙은행이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발표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엔화 가치 상승을 기대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엔테크(엔화+재테크)'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적 저점인 800원대 엔화 가치가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반등 기대로 환차익을 노리고 엔화를 매수한 투자자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발표한 '올해 2월 중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엔화예금은 4억6000만 달러 증가한 98억6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20일 기준 1조2338억엔(10조8968억원)규모로 집계됐다. 앞서 5대 은행 엔화예금은 1월 말 1조1574억엔(10조2223억원)에서 2월 말 한 달 만에 1조2129억엔(10조7133억원)으로 555억엔(4902억원) 급증한 바 있다.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가 이어지며 200억엔을 웃도는 규모가 더 불어났다.

무료 환전 서비스를 앞세운 토스뱅크에서는 엔화를 매수하는 수요가 연일 몰리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 1월18~31일 엔화를 산 규모는 2872억원으로 집계됐다. 2월에는 4532억원에 달한다. 이달 들어서도 19일까지 3150억원이 몰렸다.

특히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린 시점을 전후로 매수세가 한층 강해졌다. 토스뱅크 엔화 매수는 18일 258억원에서 기준금리 인상 당일인 19일 509억원으로 뛰었고, 다음 날인 20일 574억원으로 치솟았다. 최근 환율이 800원 후반대를 보이면서 '쌀 때 사두자'는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은 급증하는 엔테크 수요에 발맞춰 상품과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100% 환율우대와 결제·인출 수수료 면제, 공항라운지 무료 이용 혜택 등을 담은 '쏠(SOL)트래블 체크카드'를 지난달 출시했다. 하나금융도 여행 특화 서비스 '트래블로그'에서 26종 통화 환율 우대 100%, 해외 가맹점 이용 수수료 무료, 해외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출금 수수료 무료 등 혜택을 준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환차익을 챙길수 있는 엔화노출 상장지수펀드(ETF)도 인기다. 'KBSTAR 미국채 30년 엔화 노출(합성H)'의 최근 한 달간 개인 순매수 금액(22일 기준)이 342억원에 달했고, 연초 이후로는 839억원이 유입됐다.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도 지난 12일 상장 이후 131억원(21일 종가 기준)이 들어왔다.

'엔테크'가 다시 유행하는 것은 BOJ의 금리 인상 결정 때문이다. BOJ는 지난 19일 단기 기준금리를 연 0~0.1%로 올렸다. 2007년 2월 이후 약 17년 만의 금리 인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가 겹쳐 미·일간 금리차가 줄어들면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다만 엔테크에 나선 투자자들이 당장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했지만, 인상 폭이 0.1~0.2%로 크지 않은데다 추가 인상도 완만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금리 인상은 엔화 강세의 요인이 된다. 엔화 가치 반등은 연준의 금리 인하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제혁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BOJ의 정상화는 엔화 절상 요인이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폭의 엔화 절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시그널이 확실해지면 엔화 가치가 145엔 이하로 절상 폭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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