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드라마가 종영됐다.
젊은 군인과 의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드라마를 나도 매회 본방송을 사수하며 시청했다.
드라마 초반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여주인공이 무전기로 '용사의 충정'이란 군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꽃피는 강산, 번영의 새 터전에 먼동이 텄다. 너와 나 조국 앞에 바친 젊은이 자유와 번영 위한 길이라면은 이 젊음 바치리라. 이 목숨 바치리라."
군가 내용처럼, 용감한 투사가 되어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다 짧은 생을 마친 '윤봉길'의사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일제의 노예교육을 거부하며 11세에 스스로 보통학교를 중퇴하였으며, 3.1 독립운동 정신에 고취되어 남다른 애국심과 국민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되었다.
1930년 새로운 독립운동의 길을 찾아 중국으로 망명한 의사는 1932년 봄 상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홍구공원 의거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4월 29일 오전 자신의 새 손목시계와 김구 선생의 낡은 시계를 바꾸고 몸에 지녔던 돈을 전부 넘겨준 다음, 물통과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을 가지고 홍구공원으로 떠났다.
1932년 4월 29일 11시 40분, 윤봉길 의사가 던진 물통 폭탄이 단상에서 폭발하고, 폭발을 확인한 윤봉길 의사는 자결용 도시락 폭탄을 떨어뜨렸으나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 이후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고 그 해 12월 19일 26발의 총탄을 맞고 만 24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그러나 자랑스럽고 떳떳한 한 생을 마쳤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놓으라.“
사형을 언도받은 윤봉길 의사가 자신의 어린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남긴 유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본인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내용이 아닌 자신과 같은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가진 용감한 투사가 되길 바라는 진정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젊은 청년이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봄의 기운을 받아 곳곳에 피어나는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4월에, 윤봉길 의사를 생각하며 우리들의 마음에도 나라사랑이 가득 피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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