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빌딩 사이 전깃줄에 요란스레 노을이 붉다
사무실 벽에 걸린
하얀 장미는
나른한 손끝으로 밤을 몰고 온다

엉덩이 한번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한 하루
노을이 몰고 온 나른한 고독
미라 같은 창백한 얼굴과
지친 고속 전철의 브레이크 밟는 소리

낯선 목소리들이 뒤엉켜
살아 있는 웃음소리로 들리는 홀에는
와인잔에 든 붉은 빛깔만큼이나
따뜻하고 생기가 있다

어느새 노을이 붉게 타던 전깃줄엔
네온사인이 화려하고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새벽이 잦은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살아있던 죽었던 관계없이 시간은 흐른다. 한 사람의 생이 우주의 활동에 어떤 영양을 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것을 누가 증명하고 그렇다고 말할 것인가.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의 생은 태풍 속에 휘말린 티끌만도 못하다. 우주전체를 봤을 때 지구자체도 하나의 작은 별에 불과하고 지구가 없어진다 해도 우주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작은 존재다. 하지만 그 작은 것이 모여 우주를 형성하고 그 힘으로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바로 시간이다.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 사람이 우주의 움직임을 알게 된 것이다.아마도 원시시대부터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던 게 분명하다. 그것은 태양으로 증명된다. 태양의 존재와 영향을 알게 되면서 부터 인류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내었다. 시간의 계산은 하루부터 시작된다. 시간의 셈은 초, 분부터지만 삶의 셈법으로는 하루다. 김남호 시인은 삶의 활동 속에서 가고 있는 하루를 셈한다. 전깃줄에 걸려 주위의 모든 것들을 물들이고 온갖 소리에 젖어 시간은 흐른다. 거기에 깃든 사람의 시간이 허무하게 가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지금은 가지만 새롭게 오고 있다. 와인 잔에든 붉은 색깔로 따듯하고 생기 넘치게 온다. 노을에 불타던 전깃줄엔 화려한 네온사인이 불타오르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희망의 새벽이 찾아온다. 하루하루 보내며 시간은 흘러가지만 언제나 희망과 함께 오는 것이다. 김남호 시인은 하루의 흐름이 허무한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꿈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강조하여 시인의 역할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오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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