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

기억이 있어 불행 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여 불행 한 것이 인간이다. 어느 것이 맞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반드시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반드시 잊어야 한다. 한데 어렵다. 삶은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기억하지 않아야 할 장면은 항상 떠오르고 꼭 필요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현상이며 같은 결과를 낳는다. 필자는 1959년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남자 선생님을 만났는데 너무 무서웠다. 어린아이들에게 서슴없이 몽둥이를 휘둘러 공포심에 떨어야 했고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확실하게 심어진 기억은 상처를 주고 세월이 흘러가도 잊지 못하여 꿈속에서도 발현한다. 그게 인간이다. 조갑조 시인은 그 시절의 설렘을 간직하고 있으나 아픈 기억으로 남아 가끔은 악몽에 시달린다. 여고시절의 풋풋함을 환상적으로 꺼내보는 게 아니라 즐거웠던 한때의 추억을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학생 신분으로 영화를 본다는 건 모험이었다. 교복 위에 다른 옷을 겹쳐 입든가 아니면 사복을 서로 바꿔 입으며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영화관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의 환상적인 장면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목덜미를 잡는 선생님은 분명 악어였다.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학생들을 다그치고 벌까지 내렸던 그 시절, 학생의 본분과 선생님의 본분도 같으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별명을 악어라고 짓고 서로 웃었을 소녀들의 가슴은 지금 바람이 빠져가는 풍선을 닮아 가지만 그래도 그 선생님은 밉다. 오죽하면 꿈에서 까지 나타나 시절을 바꿔놓을까. 시에서는 악어라고 하였으나 가슴 속에는 그 시절의 꿈이 파릇하게 살아있어 위트와 재치가 넘쳐 조갑조 시인의 심성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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