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류근원
동화작가 류근원

추분을 지난 공기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새벽녘 서늘한 기운까지 느낄 정도이다. 보이는 산과 들이 단풍 맞이 채비에 한창이다. 논마다 황금빛으로 눈이 부시고 산길에 들어서면 여문 밤들과 도토리들 떨어지는 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감국의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밤마다 달은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몸집 부풀리는 달을 보면 왠지 모를 풍성함마저 느낀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목 좋은 곳엔 정당과 정치인이 내건 추석 현수막으로 가득하다. 산과 들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현수막이 해충처럼 갉아 먹고 있다. 민주당 대표 구속 가결 후폭풍으로 정치권은 구정물의 연속이다. 그 후폭풍이 군사정권이나 공산정권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가결했을 거라는 의원들의 살생부가 나돌고, 끝까지 추적해서 정치 생명줄까지 끊어놓겠다는 협박이 무성하다. SNS에서는 가결했을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예고까지 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미개함과 추잡함이 날뛰고 있는 정치권이다. 국회 기간이지만 민생을 위한 일엔 등을 돌렸다. 그러고도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명절에 고개 숙이며 유권자에게 다가가기 바쁠 것이다.

정부에서는 물가가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고 발표하지만, 피부로 못 느끼고 있다. 모든 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물건을 장바구니에 선뜻 넣질 못하고 자꾸만 손이 움츠러든다. 그래도 추석이다. 마트와 백화점 그리고 전통시장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붐비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는 개천절까지 포함 여느 해보다 길다. 하루만 비 소식이 있고, 맑은 날이 계속된다는 기상청의 예보이다. 추석 연휴 내수활성화를 위해 나흘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숙박 쿠폰 60만 장 지원,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주차장도 무료 개방이다. 민생 안정을 위해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43조 원을 대출과 보증 형태로 공급한다. 명절 동안 영상통화는 무료이고 프로야구 입장료도 반값이다. 그래도 만족한 기분과는 거리가 멀지만, 추석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속담이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땀 흘린 농부들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때가 추석 즈음이다. 뙤약볕 아래에서 발등에 오줌 쌀 정도로 쉴 틈 없던 농사일이었다. 그만큼 추석은 좋은 날,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까지 생겨났을까.

떨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만나는 추석이다. 이번 추석에도 모이는 자리마다 예외 없이 많은 이슈 거리가 양념처럼 올려질 것이다. 정치 이야기는 제발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날 가족 간의 화합을 깨뜨리는 원흉이다.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한창이다. 우리 선수들이 메달 사냥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금, 은메달이 줄을 잇고 있다. 결과야 무슨 상관있겠는가. 최선을 다하며 구슬땀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바로 금메달이다. 가족과 함께 응원의 함성을 보내는 것도 뜻깊은 추석이 될 것이다.

연휴가 긴 올 추석, 속담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의 삶이 보름달처럼 풍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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