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

 

가슴을 바늘로 찌르면 이런 아픔이 남는다. 충격적이지만 충격을 흡수하는 힘이 커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작품으로 위트의 묘수가 넘치고 삶을 돌아보고 현시대의 생활상을 한 장면으로 그려내었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묘목과 장목, 고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람은 어린이와 장년 노년으로 구분한다. 어렸을 때는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고 일정한 검증을 거친 음식만 먹어야 건강을 유지한다. 자라면 아무거나 먹을 수 있으나 상한 음식은 안 된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어지간한 음식도 거뜬히 소화 시키는 능력이 생긴다. 소화 시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포용한다. 사람은 수목들과 다르게 어른이 어린이를 보호하여 성장시키고 노년에는 보살핌을 받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시대는 노후의 삶은 개인의 사정에 따라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늙었다는 것은 생활력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이 없다면 삶은 끝난다. 얼마나 큰 슬픔인가. 그렇다고 젊은이가 가엽다고 보살펴 주지도 않지만 그럴 틈이 없다. 한데 노인 스스로가 자해할 필요는 없다.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억지로 이기는 참을성으로 버티는데 스스로 비하할 필요가 있을까. 박재학 시인은 그것을 말한다. 아주 노골적인 표현으로 늙음을 한탄한다. 손녀는 분명 귀엽고 장하다. 하나 노년의 삶도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손녀와 할아버지를 가려서 음식을 준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느 정도의 면역력이 있으나 사람은 마찬가지다. 유통 기간이 지난 우유를 마셔야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점잖은 비유로 현시대를 나무라고 노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은유로 그려내어 늙음이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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