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생각이 곧 행동으로 옮겨진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문제는 욕심이라는 악마다. 그 놈의 악마가 가슴속 깊숙이 자리를 하고 수시로 떠올리며 충동질을 한다,

생각이 욕심을 낳고 욕심이 곧 행동을 낳는다. 인간에게 한계가 없는 것이 욕심이다. 욕심은 무한하다. 중요한 것은 욕심의 한계이자 자제력이다.

행복과 불행 또한 생각에서 온다. 돈이 많아도 높은 권력의 위치에 있어도 마음이 가난하고 더 높은 권력, 더 많은 재력을 떠 올리면 자신이 불행해진다. 그렇다고 현실에 만족만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면 된다. 그 분수가 뭔가?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게 가능한 능력이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 처다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돼선 안 된다. 행복만 해도 그렇다. 행복은 정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

돈이 많은 사람, 정부고위직에 있는 사람, 예쁘고 잘생긴 사람, 그런 저런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면 행복은 저 멀리 도망을 친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 대대로 농촌산간에 살면서 노동일을 하며 사는 사람, 신체 어딘가가 좋지 않아 불편한 생활을 하는 사람, 그들과 비교하면 더 없이 행복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같이 자기 자신의 입장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사람과 비교하며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 진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한다는 점 잊지 말고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채근담에 쓰인 글 중에 ‘봉호에 살며 산옹과 사귀기’란 내용이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을 피해 사는 선비가 쑥대로 지붕을 덮은 초라한 집에서 살면 눈과 귀가 먹어 수 천리의 불빛을 보지 못하고 수만리의 강물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자연히 넓어져 비단장막과 화려한 방안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 보다 낫다 했다.

이 또한 똑같은 환경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정답이 없다. 분명한 것은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별함이 아니면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하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모두에게 보다 맑은 세상을 위해 특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아선 안 된다, 특히 정치인집단이 그렇다. 잘 못된 것을 바르게 잡기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반대를 위해 긍정적이며 객관적인 것까지 반대해선 안 된다.

그 과정에 물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건 더욱 더 안 된다. 무엇인가를 보이기 위한 어설픈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4. 19의거 전후와 5. 18광주민주화운동전후를 염두에 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손실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안정된 가운데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그러데 가끔 정치인 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4.19나 5.18같은 또 다른 그 무엇인가를 염두에 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정치인 중에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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