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SCOTUS). (사진=Lorie Shaull. CC BY-SA 2.0)
미국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SCOTUS). (사진=Lorie Shaull. CC BY-SA 2.0)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찾는 것이 법이라지만, 사실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힘의 우열이 명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다수기에 법적으로 이를 해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개인이 기관이나 기업,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른바 ‘증거의 편재(偏在)’라는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이는 원고·피고 중 일방만이 증거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편재가 일어나는 것은 증거수집을 할 수 있는 방법 등이 누군가에게는 없다는 얘기다.

기업이나 단체 등은 일반 개인에 비해 법적인 분쟁에 대응할 자료 등을 방대하게 가지고 있는데, 우리 법에는 개인을 위해 증거 편재 현상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우리 민사소송절차는 상대방이나 제3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일하게 문서제출명령만을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이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그 제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내부 모습. (사진=Roman Boed. CC BY-SA 2.0)
미국 연방대법원 내부 모습. (사진=Roman Boed. CC BY-SA 2.0)

 

이에 새로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의 도입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0월 해당 제도의 도입과 관련된 세미나를 개최한 데 이어 12월 1일에는 디스커비리 제도를 도입해 민사소송절차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NARS 입법·정책’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영미법에서 적용되고 있는 제도로, 변론절차를 진행하기 전 양 당사자에게 사건 관련 정보를 교환토록 하는 제도다.

우리가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 발생한 ‘LG화학·SK이노베이션 분쟁’ 때문이다. LG화학은 당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LG화학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에서 소송을 벌인 이유는 바로 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해당 사건에서 디스커버리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 법원은 지난 2021년부터 해당 제도의 도입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다.

제136호 ‘NARS 입법·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문가 11명으로 된 디스커버리 연구반을 구성하고, 2021년부터 2022년 중순까지 15차례 회의를 추진했으며, 2022년 말 보고한 최종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현실에 맞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에서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기에 좀 더 공정한 소송을 담보할 수 있게 되며, 또 승소 가능성을 파악하기 쉽기에 소 취하 또는 화해 등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아져 법원 업무 경감 효과도 나타난다.

미국-연방대법원. (사진=Carol M Highsmith. CC CC0 1.0)
미국-연방대법원. (사진=Carol M Highsmith. CC CC0 1.0)

 

이 제도는 1938년 미국에서 처음 채택됐는데, 요청이 없더라도 당사자가 스스로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상대방 등에게 증거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증거공개와 증거개시라고 부른다. 이중 증거개시는 증언녹취, 자백요구, 질문서, 문서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외에도 신체·정신 감정도 요구할 수 있다.

해당 제도는 증거확보의 공정성과 결과 예측 가능성의 상승 등 장점이 있으나, 시간·비용의 상승 등 단점도 공존하고 있다.

우리 법조계는 증거 편재 현상으로인해 개인이 기업 등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며, 실제로 조응천·최재형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들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해당 보고서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기업 영업비밀 침해 등의 단점이 여전히 존재하고, 경제적 약자의 경우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소외될 수 있지만, 민감정보 비공개 절차나 변호 비용 지원 등의 방안을 마련해서라도 해당 제도의 도입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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