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류근원
동화작가 류근원

마음이 간사하기 그지없다. 경칩 지난 뒤 봄의 모습을 찾기 바쁘다.

산모롱이에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밭둑에는 냉이 캐는 사람들이 많다. 그 모습을 보며 계절의 순환은 어긋나지 않는다고 자문자답하고 있다. 하긴 따스한 봄기운이 며칠 지속 되었다. 남녘에서는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는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가 제법 굵다. 황톳길에 물길이 생기고 나무들 겨우내 묵은 먼지 씻어내기 바쁘다. 봄비라는 확신에 비닐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비닐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통통통 실로폰 소리로 변조되어 들린다. 귀 호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일까지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가 그치면 다시 추워진다는 예보에도 마음은 벌써 봄맞이 준비로 가득하다.

봄비, 산과 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겨우내 가슴 깊이 품었던 초록빛 물감을 풀어놓기 위해 얼마나 분주할까. 나무들 기지개 켜기 바쁘고 땅속의 씨앗들은 눈을 뜨기 위해 얼마나 옹알거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있을까. 키 작은 풀들은 뒤꿈치 들며 고개 올리느라 얼마나 바쁠까. 이 비가 그치면 성큼 다가올 화사한 봄. 비 오는 산책길에서 봄의 느낌표와 말없음표를 가슴에 담는다. 바짓단에 빗방울이 튀어 묻은 자국조차 봄이다.

직박구리의 울음소리가 싱그럽다. 울음소리에 벌써 봄이 들어 있다. 산책길 빗속에서 봄을 가득 느끼고 있다. 봄이 오는 모습과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눈과 귀,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봄을 만질 수 있는 아름다운 손, 새해맞이 희망과는 또 다른 희망을 안겨주는 봄비.

그런 봄비 닮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려운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봄비 닮은 사람, 가동 멈춘 공장들의 기계가 다시 살아 힘차게 돌 게 만들 봄비 닮은 사람. 이웃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봄비 닮은 사람, 어려운 사회 구석구석을 사랑과 희망으로 흠뻑 적실 봄비 닮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취직을 하고, 연인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많이 낳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구절벽의 기로에 선 우리나라의 큰 걱정을 확 풀어줄 봄비 닮은 사람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이 시대 아버지의 움츠러든 어깨가 봄비 스친 산과 들처럼 싱싱하게 올라가고, 마트에 가면 손 오그라드는 어머니의 한숨을 단박에 없애버릴 그런 봄비 닮은 사람들이 달려왔으면 좋겠다.

이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총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며칠 안에 여야 공천이 모두 끝나게 된다. 피의자들이 부끄럼 없이 새 정당을 만들고 죗값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꼴불견 의원들이 다시 그런 정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할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 청렴결백한 국회의원? 국민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국회의원? 신기루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만들 봄비 닮은 사람을 현상수배하고 싶다. 현상수배당한 봄비 닮은 사람, 우리 주위에 가득 차면 얼마나 좋을까. 한숨부터 나온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산과 들, 나무와 꽃씨들이 얼마나 신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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