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류근원
동화작가 류근원

오랜만에 김밥을 먹었다. 뉴스에서 김밥 할머니의 이별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이다. 그런 김밥을 50여 년이나 말았던 할머니, 긴 세월 동안 지문은 닳아 없어지고 왜 그렇게까지 김밥을 말아야 했을까?

박춘자 할머니, 1929년생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장사를 시작했다. 열 살 무렵이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에게는 유독 심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의 가난은 유령처럼 떠날 줄 몰랐다.

서울역 앞에서 일본 순사의 감시를 피해가며 시작한 노점 생활.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렇게 장사해서 한 푼 두 푼 모으기까지 힘겨웠던 삶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그의 삶은 우리를 멍 속으로 빠뜨렸다. 진정한 삶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일까?

성장해서 결혼도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파국을 맞아야 했다. 그의 김밥 장사는 환갑에 이를 때까지 50여 년간 이어졌다. 남한산성 부근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을 팔았다. 남한산성을 찾는 등산객이 그를 모른다면 간첩 취급을 당해야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회자 되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김밥을 팔아 번 6억 3000만 원. 노후의 안식을 위해서 그랬을까? 그 돈이라면 충분한 안식을 취하며 남을 돈이다. 그에겐 열한 명의 자식이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 열한 명을 집에서 돌보았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성남 작은예수의집’ 건립을 위해 3억 원을 수녀원에 기부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을 위해 3억 3000만 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지난 11일 95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마지막 남은 재산 월세 보증금 5000만 원까지 기부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어디 박춘자 할머니뿐이랴. 충북대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신언임 할머니도 있다. 노점상으로 평생 모은 전 재산 51억여 원을 충북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충북대의 영원한 어머니. 그분도 지난 1월 19일 91세의 나이로 영면을 했다.

기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돈이 없어서, 돈은 많아도 아까움 때문에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생색내기 기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부는 어려운 일 중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오래오래 못 잊을 아름다운 두 할머니, 어느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되살아 날 것이다. 어느 척박한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뿜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볕 바른 곳엔 벌써 민들레 꽃이 피었다. 조금 있으면 씨앗을 달고 바람 따라 날아갈 꽃씨들. 할머니들이 뿌린 씨앗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심어졌으면 좋겠다. 기부는 단순하게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들어오고 있다.

또 봄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봄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음을 느껴보는 것, 정말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줄기보다 더 많은 상념에 젖어 들고 있다. 봄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음을 두 분 할머니 덕분에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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